달빛아래

groom & bride

달빛.. 2006. 9. 10. 03:40

친구라기보다는 거의 형제같이 지냈던 그녀였다.

기도짝궁으로 두 손을 꼬옥 잡고 늘 같이 기도했던 그녀였다.

많은 이민교회가 그렇지만 교회의 내분으로 인한 상처를 그녀도 가지게 되어

이상하게 우린 서로 떨어지게 되었었다.

 

훌렁훌렁 수영복만 걸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물속에서 같이 지냈던 아이들..

한 가족같이 한 차를 타고 멀리 긴 여행을 하기도 하는 등..

서로 어울려서 지냈던 날들이 거의 어린 시절을 채웠던 우리의 아이들이었다.

서로 피만 나누지 않았지 그렇게 오누이, 자매처럼 지냈었다.

 

"아이들은 데려오지 마세요."

무슨 결혼식이 장례식도 아니고 아이들을 거부하다니..기분이 언짢아졌다.

몇 년 동안 연락이 없던 그녀에게서 아들이 결혼한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아이들은 데려오지 말란다.

이제 다 자라서 아빠보다 더 키가 큰..

아니.. 전화한 그녀보다 꼭 두 배는 더 큰 우리 아들도 어린애로 취급하고 데려오지 말란다.

어린 시절을 같이 자란 우리의 아이들 중 가장 나이 많은 그녀의 아들,

꼭 내 큰아들 같은 느낌이 드는 아이다.

그 애가 오늘 결혼식을 했다.

아무리 멀더라도 한걸음에 달려가야 할 관계이건만..

얼마나 좋은 곳에서 피로연을 하기에 아이들을 데려오지 말라는 것일까..

아무리 좋은 곳에서 해도 그렇지..

말로는 가족 같다 하면서 형제 같은 애들이라 하면서 정말 가족이라면

오빠의 결혼식에 형의 결혼식에 너는 어린애니 오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을까?

기분이 상해서 가기 싫은 것을 아들 같은 그 애를 생각해서 먼 길을 달려갔다.

 

식장인 교회에 들어서니 groom & bride로 나누어 놓고 방명록과 축의금을 받고 있었다.

이름과 주소를 쓰며 한국에서의 결혼식장과 비교가 되었다.

신랑 측과 신부 측.. 글씨부터도 다르지만 분위기도 많이 달랐다.

식장 안 곳곳에 서서 좌석 인도를 하는 신랑과 신부의 얼굴색 다른 친구들의 수고가 돋보였고

오케스트라의 연주 또한 한층 분위기를 더했다.

들러리들은 또 얼마나 이쁜지.. 신랑 친구들은 모두 해피보이들이었다.

 

오래전에 남동생도 이곳 미국에서 결혼을 시켰지만 그동안의 결혼식과는 다르게

이젠 모두 영어로 진행이 되었다. 결혼식의 모든 순서와 심지어 주례사까지..

그리고 피로연 안내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아.. 어느새 이만큼의 세월이 흘렀구나.. 이제는 우리의 아이들이 이민2세라는..

오늘의 bride는 꼭 여왕 같았다.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했다.

식의 모든 순서가 끝나고 돌아서서 양쪽 부모에게 인사를 하고 허그를 하는데

녀의 아들이 운다.

그 애의 우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서 나도 같이 따라 울며

"녀석.. 울긴 왜.."

아들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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