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쉬는 날이 어쩌다 마주쳤다.
나야 항상 쉬는 것처럼 일을 하니 상관 없다만
남편은 그렇질 못하니..
모처럼 같이 쉬게 되는 날은 데이트하는 날이다.
부지런한 그는 늦잠도 못 잔다.
서둘러서 길을 나섰다.
지난 주 부터..
아니, 훨씬 전 부터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미뤄졌던 꼭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넓은 주차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벌써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를 본 지가 꽤 된 듯 싶다.
"자꾸 소화가 안 돼요.."
같이 밥을 먹다가 그녀가 불쑥, 던지듯 한 말이다.
그녀는 암에 걸렸다.
소화가 안 된다는 말을 한 지 얼마 안돼서 그녀는 그렇게 암 선고를 받고 말았다.
주위에 암에 걸린 사람이 많아져서 한 동안은 머리를 제대로 가꾸질 못했었다.
덕분에 긴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자르기도 했는데
그 머리는 왜 그렇게도 또 잘 자라는지
자꾸 묶고 올리고..
언제나 자랑거리로 생각했던 머리카락을
주위의 아픈 사람들 때문에 감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또다시 자란 긴 머리..
오늘은 더더욱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그녀를 봐야만했다.
어쩐지 불안해서 서두르고 싶었다.
급속도로 발전한 암때문에 그녀는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키모치료에 머리는 다 빠져 있고..
온 몸에 호스를 감고 있었다.
워낙 말랐던 사람이긴 했지만 그 고통속에 더 반쪽이 되어 있었다.
그녀를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는데
그녀는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이다.
고통스러운.. 사람이 별로 반갑지 않은,
고통만이 어서 없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눈빛일 뿐이었다.
그랬다..
병문안이라고 갔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건낼 수도 없는..
초점을 잃은 그녀와 초췌한 모습의 그녀 남편..
서로 말을 못했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다 그만 병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병동 한쪽에 마련된 간이 소파에는
황색인종인 우리보다 더 노란 색을 띤 얼굴의 백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
무슨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주렁주렁 연결된 줄들을 들고 한숨을 푹 쉰다.
그의 아내인 것 같은 피둥피둥한 몸집의 여자가 옆에서 그를 돕다가
무엇을 잊었는지 갑자기 일어나 자리를 뜬다.
그때,
간호사들이 급하게 어느 병실로 부랴 부랴 들어갔다.
황색인종인 우리보다 더 노란 그 백인 남자와 우리는
그 병실 문을 주목했지만 아무도 움직여서 그곳을 들여다 볼 생각을 못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
아파서 그렇겠지..
그녀 생각에 의자에 붙은 사람처럼 깊이 들어앉아서
가슴만 쓸어내렸다.
가고 싶다..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그녀를 위해 대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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