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아래

어머니..

달빛.. 2006. 10. 9. 23:56

 

 
'톡톡톡! 뚝딱 뚝딱! 탁탁탁!...'
아침부터 바쁘다.
오늘이 어머님 생신이기 때문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이민생활이 버거워
매 해마다 생신때면 외식하면서 꽃과 돈으로 선물을 대신했었다.
맘에 들지 않는 선물 보다는 오히려  돈으로 받기를 좋아하신 까닭도 있다.
올해는 통칭 양로원이라 불리는, 
어머니가 계신 간호병동에서 잔치를 하기로 했다.

 

이곳에서는 잔치를 한다 하면 대부분 부페식당이나 일반식당 등
주로 식당에서 하기때문에 음식을 만들어서 해 간다는 것은 
아무래도 좀 벅차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래도 기쁜 마음으로 신이나서 만들었다. 
어머니는 지난번 사경을 헤매다 회복되신후 
의사의 강권으로 어쩔수 없이 간호원들이 늘 상주해 있는 
간호병동으로 들어가셨다. 
간호병동으로 가시던 날, 
집에 가고 싶다고 하시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마음이 안타까워 
뒤 돌아서서 울었다.
"그냥 집으로 모시고 가면 안될까요?"
 .......
그럴 수 없음을 알면서도 물었다.
밖으로 나와 우는 날 보고 앞의 병실 보호자가 다가와서 위로를 했다.
당신들도 처음엔 너무 가슴이 아파서 공연히 밖을 서성였노라고..
살아주신 것만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친정아버지 생각이 났다.
미국으로 떠나올 때 몸이 몹시 안 좋으시다는 아버지를 
남편곁으로 온다는 기쁨이 너무 커서 
오고 난 뒤에도 아버지의 건강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정착하는데 두눈 동그랗게 뜨고 살아가느라
경황도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아버지만큼은 건강하게 아무일 없이 
오래 사실거라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리를 잡고나면 제일 먼저 엄마,아버지를 초청을 하려고 했다.
'자식이 효도를 하려해도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돌아가신 후에야 나는 비로소 그 말에 가슴을 친다.
어느 흐드러지게 꽃이 피던 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날마다 힘겹게 살아내느라 
이미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꽃들이 겨우 눈에 들어 오던 날.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간 
위독하시다는 아버지의 소식이었다.
자연유산의 경험으로 뱃속의 아이가 위험하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무조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을 떠나온 뒤로 처음 얼굴을 마주 대하는 아버지.
내 목소리를 들을 수도, 내 얼굴을 볼 수도 없이 무의식 상태로 누워 계셨다.
"아버지.. 저 왔어요. 제가 왔다구요. 눈좀 떠 보세요."
그렇게.. 아버진 무심했던 딸의 가슴에 아픔을 남기고 가셨다.
말 한마디도 못 해 보고..
그해는..
하늘 가득 온통 아버지의 얼굴로 그렇게 아파하며 보내야만 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나는 아버지 생각만 하면 눈물 부터 흘린다.
시어머님은 오랫동안 고생은 하셨어도 미국의 좋은 의료혜택을 많이 받으셨다.
매번의 고비마다 나는 어머니가 살아주시리라 믿었었는데 
그 믿음대로 어머닌 그 어려운 고비들을 잘 이겨내셨다.
그런데 이번엔 어머니의 살고자 하는 의지를 잃어버린 눈빛을 보고 
가슴이 철렁내려 앉아 그만 나도 모르게 뒤 돌아서서 울어 버렸다.
그동안, 어려운 고비마다 어머니가 나약해 지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을 울지 못하게 했던 나 였는데..

 

겨우.. 
정말 힘겹게 겨우 살아내셨다. 
꺼질듯 말듯한 심지불처럼..
그렇게 살아주신 어머니가 너무 고맙고 기뻐서 어머니 몸을 만지작 거렸다.
어머닌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웃으셨다.
오랜세월동안 나를 참 힘들게 하셨던 분..
외며느리 고운데 없다고는 하지만..
처음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곱게 자라다 시집온 나를 어머닌 딸처럼 대해 주셨다.
날이 갈수록 서로 살아오던 다른 환경과 성격등의 차이로 어머니에게서 나는
일방적인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전쟁통에 이북에서 남쪽으로 피난오셔서 그만 돌아가지 못하게 된 사연이 
어머니를 그렇게 억척스럽게 만들었나보다.
살아내야만 하니까..
그땐 그런 어머니를 이해를 못했는데 내 자신이 남의나라에 와서 살다보니
이젠 그 마음을 이해 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스스로 지켜야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이것 저것 재료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좋은 것으로만 샀다.
양로원에 계신 분들이 모두 내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음식을 만들때에도 기도를 하면서 정성을 다했다.
"이 음식을 모두 맛있게 드시게 해 주세요.
 이 음식을 드시고 어르신들이 모두 건강하게 살게 해주세요"
친정아버지에게 다 하지 못한 효도를 대리만족이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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