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교회 다니시는 권사님이 병원에 입원하셔서
오늘은 맘먹고 찾아 가기로 했다.
천상 여자시어 말씀도 조용조용...
지적 매력까지 있으신 그 분을 난 몹시 좋아하고 따랐었다.
꽤 연세가 많으신 그 권사님은 처녀때 유학을 오신 분으로
여러가지로 박학다식 하셨다.
어느날 교통사고로 몹시 다치셔서 오랜세월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셨었는데
사경을 헤매시다 어렵게 아주 어렵게 겨우 일어나셨었다.
혹시 다시는 못 뵐줄로 생각했었는데..
힘겹게라도 움직이시며 교회에 나오신 권사님이 몹시 반갑고 감사해서
그 후론 더 가까이 지냈었다.
그런 권사님이 후유증으로 얼마전에 다시 입원하셔서
재 수술까지 받으신 것이다.
주섬 주섬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가는 길에
어제 어머님의 입맛이 없으시다는 말씀이 생각나
해물파전을 하나 사다 드렸다.
맛있다고 연신 웃으시며 드시는 어머닐 물끄러미 바라봤다.
속으로 친정엄마도 찾아뵈어야 하는데.. 하면서.
어머님도 지금은 많이 좋아지셔서 간호병동으로 옮기셨지만
얼마전엔 사경을 헤매시며 몹시 힘드셨었다.
어느날 교회에서 여러가지 행사 이벤트 중 벽에 아이들 소개를 붙인 적이 있었다.
" 집사님~! 집사님 아들은 장래 희망을 의사라고 적어 놨던데?"
무심코 다른 아이들 인터뷰 내용만 보고 다녔는데
어떤분이 우리아들 것을 보고 다가와서 하는 말이다.
한번도 자신이 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 없는 아들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궁금해서 물었다.
" 너는 장래 희망을 의사라고 적었더라? 왜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니?"
" 응.. 할머니가 많이 아프니까 그러고 싶었어..
내가 의사가 되면 할머니 병을 고쳐줄 수 있을거 같아서.."
이제 사춘기로 들어가는 나이에 오히려 할머니를 생각하는
속들은 소리를 하는 아들이 대견스러워
그날 나는 행복한 함박 웃음을 지었었다.
" 빨리 나와! 왜 나를 피하는거야~!"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듯 생각을 확 깨게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정신을 번쩍 차리고 입구쪽을 보니
웬 미국여자가 한국말로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우리 혜린이를 찾아 달라는데 왜 모른척 해~!"
무슨 소린가 하고 당황해서 마침 옆에 있던 간호사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간호사는 놀란 기색하나 없이 오히려 웃고 있었다.
약간 치매가 온 그 분은 오직 딸만 찾아
온 병동을 그렇게 이사람 저사람 붙들고 묻고 다니다가
아무도 안 들어 주는듯 싶으면 얼굴을 벌겋게 하고 앙칼지게 소리를 지른다고 했다.
꼭 미국사람 같이 생긴 그분은 한국사람이라고 했다. 아마도 섞인 듯..
그 분의 앙칼진 음성을 뒤로한 채 어머니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정신없이 병동을 나왔다.
차를 몰아 권사님이 입원하신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그분의 애타게 딸을 찾는 앙칼진 음성이 계속 귓전을 맴돌았다.
병실에 들어서니 간호보조사들이 권사님을 보살피고 있었다.
들어가기를 잠시 미룬지가 30여분을 넘어섰다.
그 사이 여기저기 다른 병실안을 들여다보니
환자들 마다 온통 호스를 몸의 여기저기에..
보기만 해도 가슴이 내려 앉았다.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권사님을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렇잖아도 수도꼭지인 내가 여지껏 이방저방의 괴로움들을 내 아픔인양
가슴을 쓸어내리고 지나왔었는데
막상 권사님이 그러고 계신 것을 보니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권사님.. 힘내세요. 권사님은 틀림없이 이번에도 일어나실 수 있어요.
권사님은 이번에도 분명히 하실 수 있어요.
권사님.. 기도하고 계시죠? 하나님을 부르짖어 찾으세요.."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권사님의 손을 꼭 잡고 눈을 바라보며 울면서 말을 했다.
부어서 만지기도 조심스러운 손에 준비해 간 작은 십자가를 꼭 쥐어드렸다.
그러자 권사님의 손이 갑자기 꿈틀거렸다. 놀라서 보니 울고 계셨다.
흘리는 눈물을 닦아드리며 나도 같이 울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병실엔 조그만 메모장이 놓여 있었다.
방문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
권사님은 지금은 비록 사별하셨지만 남편도 이곳에서는 잘 알려진 박사님이셨고
자녀들도 의사 아들과 의사 사위등 남부럽지 않은 분이시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병실이 웬지 허전했다.
인생이 이런 것이었나.. 어쩜 이것이 우리의 미래의 모습인가..
호흡도 제대로 못하시는 권사님을 두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혹시라도 낙망하실까 간다는 인사도 못한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3일 밖에 못 사신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가슴 벌렁거렸던 얼마전의 어머니 얼굴을 떠올렸다.
그 어머닌 오늘 아주 맛있게 파전을 드셨다.
그래.. 권사님도 그러시리라 믿어보며 가을하늘을 향해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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