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아래

아스팔트, 마른 나뭇가지 그리고 남의 집 벨코니..

달빛.. 2006. 4. 3. 07:50

아스팔트, 마른 나뭇가지 그리고 남의 집 벨코니..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으로 오랫만에 전에 살던 집앞, 공원엘 들렀다.
아들은 차에서 내리자 마자 성큼 그네로 가더니 삐그덕 그네를 움직여 봤다.
어느새 껑충 커 버린 아들은 어린 날들의 추억이라도 묻어 있는 듯
애수에 젖어들고 하늘을 올려다 봤다.

 

" 왜 이사갔어?"

아빠에게 대뜸 하는 소리다.
어리둥절한 남편은 황당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친구들도 없고 학교도 낯 설고..

아빤 새 집에서 살고 싶어서 우리를 이곳에서 떠나게 한 거야."

다시 중얼 거리는 아들을 바라보며 나 또한 아무런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사는 동안 언제나 공원앞에 산다는 것에 감사했었다.

봄이면 새록새록 돋아나는 잔디들을 제일 먼저 볼 수 있었고
여름이면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불빛 환한 야구장에서 밤이 깊도록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 또한 솔솔찮았다.
가을이면 그토록 아름다운 단풍들이 거실 창문을 장식하는 한폭의 수채화..
겨울이면 대 황야처럼 하얗게 펼쳐진 너른 눈밭에서 지칠 줄 모르는 눈싸움에
하늘을 울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아름다운 겨울날들이었다.

 

아들은 그 기억을 다시 되 살린 것인지..
아름답던 지난 날의 추억이 못 내 그리운 것인지..
이사를 반대하던 엄마는 뒤로하고 아빠를 바라보며 조용한 항의를 했다.
난감해 하는 남편을 도와 뭐라고 거들어줘야 하는데
나 역시 아무런 말도 못 한채.. 하늘만 바라봤다.

 

"다시 이사 올 까?"
묻는 아빠에게 아들은 묵묵부답이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정서적인 것을 즐겨하는 내 영향인지..
아들은 나와 같이 전에 살던 집을 무척 좋아했었다.

 

여름이 생일인 아들은 생일날이면 친구들을 초대해서 바로 집앞 공원에서
놀기도 하다가 뒷 뜰 패티오에서 바베큐 파티 하는 것도 참 신나했었다.
물 풍선을 만들어 서로 던져서 터트리기도 하고 롤러 블레이드를 타기도 하고
베스킷 볼을 하는 등..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이 참 많은 집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개인집이 아니다.
화단 꾸미는 것, 잔디 깎는 것, 겨울에 눈 치우는 것 그리고 건물 외부 등
모든 것을 관리회에서 다 해 주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남편의 고집으로 빌라형식인 이 집으로 이사오게 된 것이다.
 
새로 지어서 모든 것이 다 새 것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내다 봐도 건물.. 뒤로 내다 봐도.. 차고로 들어오는 아스팔트에 작은 나무..
그리고 남의집 벨코니.. 보이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집앞, 큰 길 건너에 전번 집 공원보다 더 크고 울창한 숲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지만 집에서 한참 떨어져 있고..숲은 공원이 아니라서 그냥 바라만 봐야하는,
아무리 크고 좋아도 같이 어우러질 수 없는 부담스러운, 사용할 수 없는 무용지물어서
갑자기 정서적으로 메마르게 된 아들과 나는 처음엔 불평을 했었다.

 

그래도 세월이 흘러 그럭저럭 어느덧 그렇게 그렇게 살다보니
이제는 나에게는 그 숲이 '그리움의 숲'이라 불리는 정다운 벗이 됐지만..
오늘 새삼 옛추억의 감회에 젖은 아들은 다시 속내를 내놓은 것이다.

 

당황해서 아무 말 못하는 아빠를 보고 아들은 이내 입을 다물고..
남편과 나는 많은 생각에 서로를 말없이 바라 보기만 했다.

 

막내는 여전히 천방지축..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빠! 자전거도 가져올 걸 잘못했다! "

 

노을이 곱게 물들어가고 있는 하늘에 비행기 하나 유유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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